[반실화] 보조키





- 피묻은 경찰복은 너의 현관을 향한다. (보조키) -


3년 가까이 연애하면서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함께 연애하며 안해본 것 없고 못해본 것 없는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가끔씩 서로의 못난 자존심때문에 티격태격하며 사소한 일에 서로의 자존심을 내세웠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서로의 못난 자존심을 자랑하며 티격태격거리다, 우발적으로 튀어 나와버린 헤어지자는 통보에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한 3년이라는 세월을 허송세월로 만들어 버렸다. 

3년동안 연애하면서 무슨일이 있어도 헤어지자는 소리는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우리인데 헤어지자는 소리를 왜 그렇게 쉬운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는지... 이미 뱉어버린 그 이야기를 다시 줏어담기엔 그 상황속에 내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해질 것 같아 그렇게 등을 돌리고 그녀를 외면했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나와 그녀의 감정은 나의 우발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쉽게 잊을 수 없었고 그 날의 잘못을 사죄하고 그녀를 느끼는 나의 감정을 호소하기 위해 비겁하게도 술과 친구를 찾았다.


헤어지자는 통보를 한 그날 저녁.. 나는 친구 녀석과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나의 미련한 처세를 자책하며 그녀를 회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복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며 술을 먹기를 3시간여..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나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괜한 행동은 3년간 나를 지켜보고 함께 한 그녀에게 오히려 거부감을 주어 되려 그녀를 더욱 실망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술에 취한 상태로 그녀에게 나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진실을 토로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녀의 집으로 무작정 달렸다.

걸어서 20여분 되는 거리를 바쁜 마음에 달려 5분여만에 주파하고 그녀의 3층 베란다가 보이는 그곳을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그녀에게 용서를 구해야할 이야기를 되새김질 하며 휴대전화기의 1번 버튼을 지그시 눌렀다.

그녀와 내가 함께 맞춘 익숙한 컬러링이 울리며 그녀의 낯선 음성이 들렸다. 평소와는 다른 그 이질적인 기운에 오늘 나의 과한 언행이 그녀의 가슴에 큰 상처를 준 것 같아 눈물 한방울이 흘러나오며 그녀에게 정신없이 내 잘못들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호소는 성공적이였고 그녀 역시 내게 전화를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며 안절부절 못했다는 사실에 내심 흐뭇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그녀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자 지금까지의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자괴의 긴장이 풀리며 그녀에게 내 진심을 전했다는 하루동안의 가슴앓이가 배설되며 친구와 과하게 술을 먹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취기를 느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난간파이프를 의지하여 아파트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의식하지 못한 사이 잔뜩 취해버린 육체를 지탱하며 그녀의 문앞에 다달아 그녀를 대면한 후 다리에 힘을 풀어버렸다.

그렇게 술에 지배당하고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하루.. 하루가 지나 새벽이 되니 도무지 제어되지 않던 육체가 그녀와의 재만남을 요구하였고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바로하고 입에서 나는 술냄새를 지우기 위해 그녀의 화장실로 들어가 간간히 그녀의 집에 올 때에 쓰던 칫솔을 꺼내어 가글을 시작했다.

술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였을까.. 가글을 하면서 식도를 계속해서 자극하니 심하게 요동치던 배를 진정시킬 여력이 없어 변기통에 코를 박고 구토를 해야 했다. 그렇게 그녀의 변기통에 조용히 실례를 하고 그녀의 주방 싱크대 정수기에 컵을 갖다 대었다.

그렇게 물을 한잔 마시고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녀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속닥속닥거리는 그 목소리는 분명 동물의 목소리도 아니였고 신문이나 우유를 깨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아니였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사람을 해하는 자들.. 살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자들의 목소리였고 범행을 벌이기 전과 같은 그들만의 기류라고 직감했다.

귀를 기울여 현관앞으로 살며시 이동하며 그들의 속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여기가 그년집 맞지?"
"돈보다는 이년 몸뚱아리가 얼마나 버티는지가 더 궁금하군.. 흐흐흐"

순간... 내 여자를 호시탐탐 노리는 제 3의 눈이 있었다는 사실에 강한 분노를 느껴야 했으며 그 분노속에 감추어진 보호와 방어라는 본능적인 적색경보가 강하게 나의 머리를 진동시켰다.

일순간에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 버리진 않을까 하는 공포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냉정한 이성을 유지하며 집안 곳곳에 있는 문들을 조용히 폐쇄하며 현관문의 잠겨진 문을 확인하며 그녀의 방을 들어가 그녀를 소리나지 않게 깨우며 밖에 누군가가 너를 해하려 한다며 빨리 자리를 피하고 경찰에 연락을 취해야 한다며 조심스럽게 귓속에 속삭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당신이지 않느냐며 이 시간에 그런 이상한 농담은 무얼 의미하냐며 나를 그녀의 가슴 품에 끌어 안았다. 그녀의 이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나는 일순간 사고가 마비되어 버렸고 이미 그녀의 품에 안겨버린 나는 불과 몇분전에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이 씻은 듯 사라지며 이미 좀전에 혼절한 내 자신이 그녀에 대한 사과와 죄책의 보상을 과잉보호적인 사고의 허상에 기인시킨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의 가슴품은 안락하고 포근하며 아름다웠다. 그렇게 술에 취하며 그녀에게 취하며 서로의 팔에 누워 얼굴을 맞대며 맛있고 기분좋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한 3~4시간이 흘렀을까, 밖에서 또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내가 아까전에 들었던 소리는 단순히 그녀의 보상을 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실과 현실 자체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또다시 급증하는 심박수.... 그렇게 이른 아침에 조심스레 현관앞으로 다시 걸어가는데 이번엔 속닥거림이 아닌 당당함이 묻어 있는 벨소리가 울렸다. 현관앞에서 어물쩡거리던 나는 누가 아침부터 그녀를 찾는지 그들을 보기 위해 모니터를 확인하였다. 

"경찰입니다. 2층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잠시 나와 주시겠습니까?"

경찰복을 입은 경찰 2명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정신이 없던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상황인식에 머리를 굴리다 경찰이라는 말에 추호의 의심없이 지금 나간다는 말한마디를 하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문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왠지 이질적인 기운..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그 목소리와... 낯선 기억들에...... 경찰이란 말에도 보조키를 열지 않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경찰복을 입은 자들의 바지에 흥건히 젖어 있는 빨간 피와... 진동하는 피냄새와 함께 그들의 두 눈이 나와 마주쳤다. 칼을 들며 나를 향해 웃고 있던 그들이 내게 이야기 했다.
"영리한데?" 

나는 전심을 다해 문을 끌어 당기며 문을 잠그기에 여념없었고 그들 또한 현관문을 잡으며 괴기한 웃음소리를 흘러내었다. 하지만 이 소란에 여자친구가 거실로 나와 문을 잡고 있는 나의 눈을 보며 놀란 얼굴로 수화기를 들고 경찰과 경비실에 연락하였고 피묻은 경찰복의 발소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그렇게 신고를 접수하고 숨죽이며 경찰을 기다리자 밖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신변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안전한 신변과는 반대로.. 2층의 베란다 창문에는 빨간 피가 묻어 있었으며 신혼부부로 추정되는 분들과 3살 난 어린아이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에 잠시 할말을 잃었고 그녀와 함께 있었던 3층의 베란다에도 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본래 의도가.. 그녀를 지목한 범행이였거나 나와 그녀를 향한 범행에서 2층의 단란한 신혼부부의 억울한 죽음이였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날의 생생한 목소리와 보조키는 여전히 나의 뇌리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으며 지금 결혼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귀한 목숨 바쳐주신 그분들께 항상 애도하며 그들의 몫까지 함께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분들의 명복을 위해서 그때의 그 눈동자를 잊지 않으며.. 그 짐승보다 못한 악마들을 검거하기 위해서... 여전히 많은 형사들이 수고하고 있다. 비록 하늘에 내 마음 닿지 못하더라도 나의 마음은 항상 감사함과 죄송함을 상기하니 그분들의 희생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그리고 오늘.. 피묻은 경찰복은 너의 현관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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