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케베츠 불곰사건



산케베츠 불곰 사건(三毛別 羆事件)

산케베츠 불곰 사건(또는 로쿠센사와 곰 피해사건, 도마마에 불곰 사건)이란 1915년 12월 9일부터 12월 14일까지 홋카이도 루모이 도마마에 마을(현:도마마에초 고단베츠) 산케베츠(현:산케이) 로쿠센사와에서 발생한 일본 역사상 최악의 수해(獸害)사건이다.
불곰이 수 차례에 걸쳐 민가를 습격해 개척민 7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건의 경위>
사건의 현장이 된 홋카이도 산케베츠 로쿠센사와는 일본해 연안에서 내륙으로 30km 정도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다.
지명인 '산케베츠'는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언어로 '강의 하류에 흐르는 강'을 의미하는 '산케 ・베츠(サンケ ・ペツ)'에서 유래하였다.

1915년 11월 초순의 어느 날 밤, 개척민 부락의 이케다가(家)에 거대한 불곰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기르던 말이 놀라 날뛰었기 때문에 피해는 옥수수 몇 개에 그쳤다.
당시 마을은 개척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된 토지였기 때문에 이러한 야생동물들의 출몰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집 주인인 토미조는 진흙에 새겨진 발자국의 크기에 불안감을 안게 되었다.

그리고 11월 20일, 다시 불곰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별 피해는 없었지만 말이 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 토미조는 근처 마을에서 두 명의 포수를 불러 불곰을 포획하기로 했다.
그리고 11월 30일, 세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불곰을 향해 사격을 가했지만 포획에는 실패. 다음날 아침, 둘째 아들인 가메지로를 포함한 네 명은 오니시카산 쪽으로 향한 불곰의 발자국을 쫓아 핏자국까지는 확인했지만 눈보라가 심해져 더 이상 추격을 하지는 못했다. 


12월 9일

<오타가(家)의 참극>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개척민 마을은 수확한 농작물을 출하하기 위한 여러 작업에 쫓기고 있었다.
산케베츠 같은 벽지에서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자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일을 하며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2월 9일 아침, 산케베츠 상류쪽에 있는 오타가 역시, 당시 오타가에 세들어 살고 있던 나가마츠 요우키치(통칭 오도, 59세)가 벌채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나가고 오타가의 가장인 사부로(42세)도 강 하류에 빙교(얼음다리로서, 목재로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눈이나 얼음을 덮어 얼려 완성시키는 다리)를 만드는데 사용할 재료 조달을 위해 외출해 사부로의 아내인 아베 마유(34세)와 오타가에 잠시 신세를 지고 있던 하스미 미키오(6세)만이 남아 곡물 선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도가 언제나처럼 점심 식사를 위해 돌아와보니, 토간(방과 방사이를 흙바닥으로 해둔 곳)의 이로리(일본 전통식 실내 화로) 가장자리에 미키오가 홀로 앉아있었다.
자신을 놀려주기 위해 자는체하고 있는거라 생각한 오도는 일부러 큰 소리로 부르며 다가가 미키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오도는, 미키오의 얼굴 아랫쪽에 늘러 붙어있는 핏덩어리와 무언가에 물어 뜯긴 목 부위의 상처를 보게 된다. 그리고 머리 옆부분에는 엄지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미키오는 이미 숨져있었다.
오도는 공포에 몸부림치면서도 마유를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단지 어두컴컴한 안쪽의 거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감돌 뿐이었다.  
심상치 않은 사태에 집을 뛰쳐나온 오도는 하류의 가교 현장으로 내달렸다. 
오도의 이야기를 듣고 오타가로 달려온 남자들은 집안 모습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이것이 불곰의 짓이라는걸 알아차렸다. 입구 반대쪽의, 옥수수를 말리던 창문은 부서져 있었고
거기서부터 토간의 화로까지 일직선으로 나 있는 불곰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이다. 아마 옥수수를 먹으려 창문으로 접근한 불곰의 모습에 마유와 미키오는 놀라 소리쳤을테고
그것이 불곰을 자극했을 것이다. 발자국이 이어진 거실을 조사해보니 그을려있는 장작 몇개가 굴러다니고 있었고 손잡이가 부러진, 피에 물든 도끼가 하나 있었다.    
둥글게 나 있는 불곰의 발자국은 방 구석으로 이어져있었고 거기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그것은, 불 붙인 장작과 도끼를 휘두르며 저항하던 마유가 결국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는걸 보여줬다.
그리고 불곰은 마유를 끌고 토간을 지나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던듯, 창틀에는 마유 것이라 생각되는 머리카락이 끼어있었다.

오도가 미키오의 죽음을 알아챘을 때, 토간에는 아직 따뜻한 찐감자가 굴러다니고 있었다한다. 즉, 사건이 벌어진후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것.
사실은 사건 직후,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오타가 앞 길을 말을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집에서 숲 방향으로 나 있는, 무언가가 끌린 흔적과 혈흔을 발견했지만 포수가 산에서 잡은 사냥감을 갖고 오타가에서 잠시 쉬고 있다고 생각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한다. 이런 상황들로 볼 때, 사건은 오전 10시반 정도에 일어났을거라 추측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12월의 홋카이도는 해가 일찍 떨어지기에 미키오의 사체를 거실에 안치한 후인 오후 3시 쯤부터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오타가에서 500m 정도 하류쪽에 위치한 메이케이 야스타로(40세)의 집에 남자들이 모여 차후 대책을 논의했다. 불곰 토벌과 마유의 사체 수색은 다음 날로 미룰 수 밖에 없지만,
경찰과 야쿠바(면,읍,동사무소에 해당되는 사무소) 그리고 미키오의 집에 서둘러 연락을 취해야만 했다. 하지만 별 다른 통신 수단은 없고, 누군가 직접 찾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
한 남자가 선발됐지만 본인이 거부해 결국 사이토 이시고로(42세)가 향하기로 했다. 오타가보다 더 상류쪽에 집이 있던 이시고로는, 급한 볼일로 가장인 야스타로가 집을 비워야만 하는 메이케이가에 가족들을 피난시키고 남자가 한 명은 있어야한다고 생각해 오도를 그 집에 같이 머물게 하는 조취를 취했다.


12월 10일

<수색>
이른 아침, 사이토 이시고로는 마을을 나서고 남은 남자들은 불곰 토벌 및 마유의 사체를 찾기위해 약 30명 정도의 수색대를 결성했다.
전날의 불곰 발자국을 쫓아 숲으로 들어간 그들은, 150m정도 들어가다 불곰과 조우하게 된다. 말의 크기를 가볍게 넘어서는 거대함, 전신이 검은 털로 덮여 있지만 가슴 부위에 흰얼룩점을 가진 불곰은 수색대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상황 속에서 총을 가진 다섯 명이 겨우겨우 총구를 들이댔지만 발포를 한건 단 한 명 뿐이었다. 성나 날뛰는 불곰을 앞에 두고 수색대는 뿔뿔이 흩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불곰이 도주를 했기 때문에 피해는 없었다.
주위를 추스리고 주변을 수색하던 수색대는 분비나무의 밑동에서 잔가지가 몇개 놓여있는, 피에 물든 눈 지반을 발견했고 눈 밑에서 검은 버선을 신은, 포도색 각반(걸음을 걸을 때 가뜬하게 하려고 발목에서 무릎 아래까지 감는 띠)이 감긴 무릎 아래만 남아있는 다리와 두개골 일부만 남겨진 마유의 사체를 발견했다.
이제 이 불곰은 인육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마유의 사체를 눈에 숨기려 한 것은 보존식으로 삼기 위한 행동이었다. 
빼앗긴 먹이를 되찾으려는 불곰의 습성을 알고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불곰은 다시 나타날거야"

<오타가에 대한 또 한 번의 습격>
밤이 되었고, 오타가에는 상이 차려졌지만 불곰의 공격을 두려워해 9명 만이 찾아왔다. 그 중 한 명인 하스미 치세(33세, 미키오의 모친)가 손님들의 술 시중을 들고있던 오후 8시반 쯤, 큰 소리와 함께 거실 벽이 돌연듯 무너지며 불곰이 실내로 들어왔다. 관이 뒤집히고 시체가 흩어졌으며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대들보로 올라가거나 야채 저장소와 변소로 도망가는 등 몸을 숨기려했다. 그런 혼란 속에서, 한 남자가 당치않게도 아내를 넘어뜨린후 밟고 올라가 혼자만 대들보 위로 도망쳤다. 그 후 부부간에는 싸움이 끊이지 않고 남편은 평생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다.  
이 소동 속에서도 기력을 잃지않고 기름통을 두드리며 불곰을 위협하는 사람이 있었고, 여기에 정신을 차린 한 남자가 총으로 불곰을 쏘았다. 그리고 300m 떨어진 옆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50명 정도의 남자들이 비명 소리 등을 듣고 오타가로 달려갔지만 이미 불곰은 모습을 감춘 뒤였다.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에 안도한 일동은, 일단 메이케이가로 피난하기 위해 하류로 향했다.  

<메이케이가의 참극>
오타가에서의 소동은 메이케이가에도 전해져, 피난해있던 여자와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불을 때며 밤을 지내고 있었다. 
메이케이가를 지키고 있던 몇몇 남자들은 근처로 식사를 하러 나갔다가 오타가에 불곰이 나타났단 소식을 듣고 그쪽으로 향한 상태였다.
그리고, 오타가에서 도망친 불곰은 이 무방비 상태인 메이케이가로 향하고 있었다. 

오타가에서 불곰이 도망친지 20분도 지나지 않은 8시 50분경, 넷째 아들인 우메키치(1세)를 업고 토벌대의 야식을 준비하던 메이케이 야스타로의 아내 야요(34세)는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창을 뚫고 침입한 검은 물체에 놀라, "누구야? 뭐하고 있는거야?" 라고 소리쳤지만 답변은 없었다. 그 정체는 지금까지 본적이 없던 거대한 불곰이었다.
호박을 찌고 있던 화로의 솥이 뒤집히며 화롯불이 꺼지고 혼란 속에서 램프 등도 떨어지고 꺼져 집 안은 암흑 천지가 되었다. 야요는 집 밖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공포에 떨며 다리에 매달린 둘째 아들 유지로(8세)때문에 순간 휘청거렸고 그 틈을 타 불곰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불곰은 업고 있던 한살배기 우메키치를 물었다. 
그대로 세 명은 불곰에 휘둘리게 됐고 야요는 머리를 물린다. 그 때, 유일한 집 안 남자였던 오도가 도망치려 대문간으로 달려갔고 거기에 신경을 뺏긴 불곰은 모자를 놓아주었다. 
그 틈을 이용해 야요는 아이들을 데리고 탈출한다. 한 편 곰에게 쫓기던 오도는 으슥한 곳에 몸을 숨기려 했지만 결국 곰에게 허리 부분을 물리고만다.
그리고 오도의 비명 소리에 불곰은 다시 공격 목표를 바꿔 집 안으로 눈길을 돌리고, 거기에는 아직 일곱 명이 남아 있었다.
불곰은 메이케이가의 셋째 아들인 긴조(3세)와 사이토가의 넷째 아들인 하루요시(3세)를 일격에 때려 죽이고 사이토가의 셋째 아들인 이와오(6세)를 물어뜯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채 저장소에 숨어있던 이시고로의 아내 사이토 다케(34세)가 얼굴을 내밀었고 그녀 역시 불곰의 표적이 되었다. 당시 다케는 임신한 상태였다.
불곰의 발톱에 걸려 거실로 끌려나온 다케는 "배만은 찢지마!"라고 소리치며 태아를 살려달라 외쳤지만 공허한 울림으로 끝났고 곰에게 상체부터 먹히기 시작했다.  

강 하류로 향하고 있던 일행은, 시끄러운 소리와 절규를 듣고 서둘러 메이케이가로 향한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던 중, 중상을 입은 야요를 만나 메이케이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듣게 된다.
또한 집 밖에서 오도를 찾아 보호하고, 남자들은 메이케이가를 둘러싼다. 하지만 암흑 천지가 된 집 안으로 섣불리 들어갈 수 없었다.
집 안으로부터는, 다케로 생각되는 여자의 신음소리와 고기를 십고 뼈를 깨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불을 지르자는 의견과 집 안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가하자는 의견 등이 나왔지만 아이들이 아직 살아있을 거라고 외치며 야요가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일행은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쪽은 입구 근처에 총을 지닌 열 명 정도가 위치하고 나머지는 집 뒷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 뒷쪽에 있던 한 사람이 공포를 두 발 쏘자, 불곰은 입구를 부수고 밖에서 기다리던 남자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맨 앞에 있던 남자가 총을 쏘려 했지만 또 다시 불발. 다른 이가 총격을 가하려 했지만 곰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횃불을 들고 들어간 집 안의 광경은 처참했다. 피는 천장에 까지 튈 정도였고 온통 피바다였다. 그리고 먹다 남겨진 두 아이와 다케의 시체가 거기에 있었다.
상체를 먹히던 다케의 배는 찢겨 있었고 뱃속의 태아가 밖으로 끌려 나와 있었지만 불곰은 태아에게는 손을 대지 않은 것 같았고 발견 당시까지만 해도 태아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한다.
하지만 태아 역시 한 시간 후에 사망했다. 무사히 살아남은 메이케이가의 장남 리키조(10세)는 잡곡 포대 뒤에서 살육의 일부 현장을 목격했으며, 메이케이가의 장녀 히사노(6세)는 실신해 그대로 거실에 쓰러져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녀 역시 무사히 살아남았다.  
서둘러 생존자들을 보호하고 사체를 거둔 일행이 집을 나왔을 때, 집 안에서 갑자기 남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일전쟁에 참전했던 한 남자가 홀로 집 안으로 들어가, 거적 아래에 숨어있던 이와오를 발견했다. 이와오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어깨와 가슴을 물어 뜯기고 왼쪽 넓적다리에서부터 궁둥이는 뜯어 먹혀, 뼈만 남아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전원 분교장으로 피난하기로 하고, 중상자들도 3km 하류에 있는 츠지가에 수용되어 응급 처치를 받았다. 
하지만 이와오는 모친인 다케의 참사를 알지도 못한채 "엄마! 곰 좀 쫓아줘요!"라고 외치며 사경을 헤매다 20분 후에 사망하여 이틀간 여섯명, 태아를 포함하면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야요 등의 부상자들은 다음날 3km 더 하류에 있는 집으로 옮겼으며 12일에야 고탄베츠에 있는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12월 11일
모든 주민이 산케베츠 분교장으로 피난해 로쿠센사와에는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단단히 문단속을 하며 밤을 보내는 산케베츠의 각 농가가 불곰 퇴치를 위해
때는 불들 만이 으스스하고 쓸쓸한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작은 마을의 주민들 만으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장로들은 불곰 퇴치를 경찰과 행정기관에 부탁하기로
결의했다. 한 편, 가족에게 닥친 비극을 알리없이 눈길을 내달리던 사이토 이시고로는 관공서와 경찰에 오타가 사건 보고를 끝내고 10일은 도마마에에서 머문 후 11일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류의 산케베츠에 도착해, 아내와 아이들의 죽음을 알게 된 이시고로는 그대로 눈 위에 엎드려 통곡할 수 밖에 없었다.


12월 12일

<토벌대 조직> 
로쿠센사와 불곰 출몰 연락은 홋카이도 도청에 전해졌고, 보안과는 하보로 분서장인 칸 미츠구 경부에게 토벌대 조직을 지시했다.
한 편, 사망자의 검시를 위해 말 썰매를 타고 가장 먼저 현지로 향하던 의사는, 정오 무렵 산길에서 불곰의 변을 발견했다.
변 속을 파헤쳐보니 안에서는 인골과 머리카락 그리고 소화가 덜 된 인육 등이 발견됐고 의사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칸 경부는 근처 청년회와 소방단 그리고 지원한 젊은이들과 아이누족에게도 협력을 부탁했으며 무라다 총(일본이 영국 기계를 도입해 1880년부터 제조하기 시작한 총)과 일본도 등으로 무장한 많은 인원이 산케베츠에 모였다. 부 대장은 지형에 익숙한 제실임야국(현:임야청 林野 庁)인물을 임명하였으며 대장인 칸 경부는 주요 지점에 대기한채 토벌대에게 수색을 명령했다. 하지만 임야에 능숙히 숨어다니는 불곰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매복>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한채 해가 떨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토벌대 본부는 수색에 대한 검토를 하기 시작했다.
불곰은 먹이를 되찾으려 하는 습성이 있다. 이걸 이용해 불곰을 유인하는 작전이 제시됐지만 그 먹이란 바로 곰에게 살해당한 마을 사람들. 곧 본부 내 의견이 둘로 갈렸다.
칸 대장은 목적을 위해 그 안을 채용하기로하고 단단히 각오를 한채 유족과 마을 사람들 앞에 섰다. 하지만 칸 대장의 설명에 누구 하나 의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었고 모두 조용히 그 안을 수용했다. 
사태는 그 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이렇게해서, 희생자의 사체를 불곰을 잡는 미끼로 쓰는 전대미문의 작전이 채용되었다.
작전은 바로 실행되었다. 총을 잘 다루는 일곱 명이 선발되었고 교대 요원 한 명을 제외한 여섯 명이, 대들보 위에서 불곰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후, 거실에 놓여진 여섯 사체(태아의 사체를 포함)가 뿜어내는 썩는 냄새를 맡고 불곰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에서 나와 집으로 다가오는 불곰의 모습에 모두 침을 삼키며 절호의 찬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집 바로 앞에서 불곰은 걸음을 멈추고 잠시 경계를 한 후 몇 번이고 집 주위를 돈 후 숲 속으로 사라졌다. 남자들은 그대로 다음 날까지 기다렸지만 불곰은 나타나지 않고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12월 13일
이 날, 아사히카와의 육군 제7사단 28연대가 사건 해결을 위해 투입이 결정돼 장병 39명이 출동했다.
한 편 불곰은 마을의 빈 집들을 돌아다니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닭을 잡아 먹기도하고 된장이나 청어 절임 등의 보존식을 뒤적거리고 옷과 침구 등을 찢어놓기도 했다. 그 중에서 주목할만한건 여자가 사용하던 베개나 따뜻하게 달궈 난방용으로 쓰던 돌 등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을 보였단 점이다.
산케베츠의 여덟 집이 피해를 입었지만 그 난동 속에서도 불곰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난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불곰의 행동은 신중함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 번 맛 들인 먹이를 찾아, 대낮에도 불구하고 대담히 인가에 들어가는 등 경계심이 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행동 영역 또한 점점 넓어지며 강 하류에까지 이르러, 발견될 위험성 역시 높아져 가고 있었다.
칸 대장은 빙교를 방어선으로 삼고 이곳에 총든 이들을 배치해 경계에 들어갔다.  
날이 저물고, 다리에서 경비를 맡고 있던 한 명이 강 건너편 기슭의 그루터기들에서 수상한 느낌을 받았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낮에 새어두었던 그루터기 갯수 보다 한 개 많고 조금 움직이고 있는 것도 있었다. 보고를 받은 칸 대장이 사람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큰 소리로 말을 걸어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불곰이라 판단한 칸 대장은 발포 명령을 내렸고 일제히 그곳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러자 수상한 그림자는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역시 불곰이었다는 생각에 다들 아쉬움과 분한 마음을 분출했지만, 칸 대장은 곰을 잡을 수 있을거란 희망이 들기 시작했다.    


12월 14일

<악마의 최후>
날이 밝자 강 건너편을 수사하기 시작한 일행은, 불곰의 발자국과 혈흔을 발견했다.
총을 맞았다면 움직임이 둔할거라 판단한 대장은 서둘러 토벌대를 산 속으로 보내기로 했다.
가장 빨리 산에 들어간건 10일, 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산케베츠에 찾아온 야마모토 헤이키치였다.
오니시카 마을에 살던 야마모토는 젊은 시절, 고등어를 손질하는 부엌칼 하나로 불곰을 쓰러뜨린 경험이 있는 남자로서 군모를 쓰고, 러일전쟁의 전리품인 총 한자루로 수 많은 짐승을 사냥한 유명한 포수였다.
불곰은 신갈나무에 매달려 쉬고 있었다. 곰은 산기슭을 오르고 있는 토벌대에만 신경을 쓰느라 천천히 몰래 다가오는 야마모토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20m 정도까지 곰에 접근한 야마모토는 나무 뒤로 잠깐 몸을 숨긴후 사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총성이 울렸고, 첫 발은 불곰의 심장 근처에 명중했다.
야마모토는 바로 다음 탄을 넣고 재빨리 두번째 사격을 가했으며, 총알은 곰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12월 14일 오전 10시, 서둘러 달려온 토벌대가 본 것은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악마의 최후였다. 

<곰 바람(쿠마가제)>
불곰은 340kg, 2.7m에 이르는 거대한 수컷으로서 군데 군데 누런 털이 섞여 있는 검은 몸에는 가슴에서 등에 걸쳐 하얀 얼룩점이 있었다.
7~8세로 추정되었으며 몸에 비해 머리가 이상할 정도로 큰 특징이 있었다. 
분노가 폭발한 대원들은 봉으로 곰을 내려치기도 하고 걷어차고 밟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명이 외치는 만세 소리에 산 속은 메아리쳤다.
12일부터 삼일간 투입된 토벌대원은 600명 이상이었으며 아이누족의 개도 열 마리 이상이 투입됐고 도입된 총포는 60정에 달했다.
불곰의 사체는 농가까지 끌려 나왔으며 말에 실렸다. 하지만 놀라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지 못하여 결국 남자들 몇 명이 썰매에 싣고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썰매를 끈지 얼마 안 가 하늘이 어두워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삼일간 계속 맑은 날씨였건만 눈은 이윽고 눈보라로 바뀌어 썰매 끄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이런 식으로 날씨가 갑자기 바뀌는 것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쿠마가제(곰 바람)'라 부르기 시작했다. 

<해부>
눈보라를 뚫고 한 시간 반에 걸쳐 옮긴 불곰의 사체는 산케베츠 청년회관으로 옮겨졌다. 
우류에서 온 한 아이누족 부부는 곰을 본 후, 몇일 전 우류에서 한 여자를 잡아먹은 곰이라고 말하며 그 증거로 뱃 속에서 붉은 옷감이 나올거라 했다. 한 포수 역시, 아사히카와에서 여자를 잡아먹은 곰이라면 살색 각반이 나올 것이라 했다.
야마모토 헤이키치 또한, 이 곰이 아마시오에서 한 여자를 잡아먹고 세 명의 포수에게 쫓기던 녀석이 틀림없다고 진술했다.
해부가 시작되고 위가 열리자 그 안에서 붉은 천과 살색 각반, 그리고 아베 마유가 입고 있던 포도색 각반이 머리카락과 함께 발견되었고 모인 인원들은 다시 한 번 슬픔과 분노의 감정에 휘말렸다. 희생자 공양을 위해 곰의 고기는 삶아서 먹었는데 질기고 단단해 맛은 별로였다한다.
벗긴 가죽은 오랜 시간 밖에서 건조시켰고 그 후 간과 함께 50엔에 매각됐지만 토벌대는 이 돈을 피해자 유족들에게 건냈다.
이 모피와 두개골 등은 후에 모두 사라져 지금 전해지는건 없다.


-그 후-
머리에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도 굳세게 행동했던 야요는 그 후 순조롭게 회복했지만, 업혀 있던 채로 곰에게 물렸던 메이케이 우메키치는 그 후유증에 시달리다
2년 8개월 후 사망했다. 이 소년을 포함해 사건의 사망자를 여덟 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같은 집에서 불곰의 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메이케이 유지로는 사건 27년 후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했다.
오도도 회복해 다음 해 봄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강에 빠져 사망했다. 곰에게 받은 상처가 영향을 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사건은 해결됐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심리적 공포심이 남아 있었다. 마을 밖에 연고가 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로쿠센사와를 떠났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수리하고 찢겨진 침구와 옷가지 대신 불을 쬐며, 겨우겨우 겨울을 넘겼다.
하지만 봄이 와도 마을 사람들은 기력을 되찾지 못했고, 오타 사부로는 집을 태우고 하보로로 떠났다. 그 후, 한 명 한 명씩 마을을 떠나 하류에 있는 츠지가를 제외하고 마을에는 단 한 사람도 살지 않게 됐다. 
불곰을 죽였던 야마모토 헤이키치는 그 후에도 포수로서 활약했고, 1950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손자에 의하면, 평생동안 쓰러뜨린 불곰이 300마리를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 당시 일곱 살이었던, 산케베츠 촌장의 아들 오가와 하루요시는 그 후 소문난 불곰잡이가 됐다. 
그 이유는, 희생자 한 명 당 10마리의 불곰을 잡겠다는 맹세에 따른 것으로, 62년간에 걸쳐 102마리를 죽인 후 숨진 마을 사람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비를 건립했다. 또한 하루요시의 아들인 다카요시도 사냥꾼이 되어 1980년에는, 아버지 하루요시도 쫓은적이 있던 체중 500kg인 불곰 '홋카이타로'를 8년에 걸친 추적 끝에 사살하기도 했다. 그리고 5년 뒤에는 다른 두 명의 사냥꾼과 함께 체중 350kg이 나가는 '케이코쿠타로'도 사살했다.


-사건의 분석-

<원인>
이 사건은 동면에 실패한 곰이, 공복에 시달린 나머지 흉폭해져 일으킨 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 후, 같은 케이스의 사건이 발생한적이 없으며 최근들어 기존의 주장에서 많은 의문점이 발견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사건을, 에도 시대 후기부터 시작된 무분별한 벌목과 메이지 이후부터 시작된 내륙부 개척으로 인해 야생동물과 인간의 활동 범위가 겹쳐진 결과로 보고 있다.

<교훈>
이 사건을 조사하고 기록해 보고서로 펴냈던 기무라 모리타케는, 이렇게 큰 참사로 번진 이유에 대해 분석하였다. 
최초에 상처 입혔던 곰을 그대로 방치해 둔 것과, 평소 총을 다룰 일 없는 농민들의 총기 사용 미숙이 요인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불곰의 행동에 대해서 언급해본다.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건 발생 후, 마을 사람들은 불로 곰을 쫓으려 했다. 일반적으로 '야생 동물은 불을 무서워한다'라는 풍설에 의한 것인데 실제 오타, 메이케이가 양쪽 집에 대한 습격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불곰은 등불이나 화롯불 등에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집착심이 강하다
옥수수를 몇 번이나 노렸던 점, 이전에도 여러 여성들을 잡아먹었던 불곰이 산케베츠에서도 여성의 옷가지 등에 이상하리만치 집착심을 보인 점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먹다 남긴 아베 마유의 사체를 눈 속에 숨겨두었던 것, 오타가에 몇 번이나 나타났던 점 등도 불곰의 특성에 의한 것이다.
한편으로 말에게는 전혀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도망치는 것을 쫓는다
메이케이 야요 등이 구사일생 할 수 있었던건 불곰이 도망가는 오도에 신경을 빼았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먹이를 먹고 있던 중이라도 불곰은, 도망치는 것을 반사적으로 쫓아가는 경향이 있다. 

*죽은체는 무의미하다
메이케이가의 참극에서, 기절해 무방비 상태였던 메이케이 히사노와 결과적으로 목숨을 잃긴 했지만 다케의 태아는 불곰에게 공격을 받지 않았다.
이건, 불곰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때 다른 먹을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한 번 인육 맛을 본 동물은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곰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가끔 사람을 공격하는건 갑자기 인간과 조우했을 때의 공포심에서 유발되는 것이라 알려져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이나 방울 소리를 내서 미리 사람의 존재를 인식시키면 안전하다는게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인간의 무력함을 알게 되고 인육 맛을 본 곰은 일부러 인간만을 공격하게 된다. 그러한 곰에게 종 등을 울리는건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꼴이 되어 오히려 위험할 뿐이다.
또한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집착심이 강하다' '움직이는 것을 쫓는다' 등의 습성은 후에 발생한 '이시카리누마타 호로신 사건' '후쿠오카대학교 파티 조난사건'을 일으킨 불곰들의 행동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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